Worship2009/06/22 19:03

Israel Houghton - The Power of ONE

★★★★★

 

오늘 리뷰할 앨범은 작년 11월 말에 처음 공개되고 3 24일에 마침내 출시되기까지 4개월간 목 빠지게 기다렸던 이스라엘 휴튼의 새 앨범 "The Power of ONE" 이다. 이번 음반은 근 8년간 Israel & New Breed로 에너지가 넘치는 숱한 라이브 앨범들을 출시하며 그 과정에서 2개의 그래미와 셀 수 없는 도브, 스텔라 상을 휩쓸고 모던워십의 가장 영향력 있는 아티스트/예배인도자로 입지를 굳힌 이스라엘이, 처음으로 "New Breed" 라는 딱지를 떼고 출시한 솔로 음반이다(물론 1997년에 첫 솔로 음반을 내긴 했지만, 잘 알려지지 않았으므로 제외). 사실 이것 때문에 음반이 처음 발표되었을 때 적잖이 실망했었다. 작년의 Deeper Level Conference 집회의 실황 음반을 기대했었기 때문에 물론 2002년도에 나온 스튜디오 음반 Real도 매우 좋았지만, 이스라엘의 진가는 스튜디오보다는 라이브에서 빛을 발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음반을 구매해서 듣다 보니 "역시 이스라엘" 이라는 감탄사와 함께 실망감은 눈 녹듯 사라져버렸다. ^^;

 

이번 음반의 전체적인 사운드는 이전 음반들에 비해 많이 달라졌다. 물론 매 음반마다 약간의 변화가 있긴 했지만, 이번 음반은 그 변화의 폭이 가장 크게 느껴지는데, 긍정적인 변화와 부정적인 변화를 둘 다 가져왔다. 우선 긍정적인 변화부터 이야기하자면, 사운드가 더 다양해졌다. 장르로 구분할 수 없는 변화무쌍한 사운드가 이스라엘의 트레이드마크인 것을 생각할 때, 여기서 더 다양해졌다면 얼마나 더 대단할지 감이 오리라 생각한다. 부정적인 변화는 사실 주관적인 견해라 할 수 있는데, 솔로 스튜디오 음반이기 때문이지 라이브의 화려함이 축소되고 이전보다 사운드가 많이 절제되었다. 화려한 라이브의 폭발적인 에너지를 매우 좋아했던 터라(특히 업비트 곡들에서는) 이것에 약간 실망해서 별점을 반 깎을까 했지만, 그래도 음반 자체의 훌륭함이 이 정도 변화쯤은 충분히 커버하고도 남는다는 생각에 만점을 매겼다.

 

먼저 언급했지만 사운드의 다양성은 상상을 초월한다. 갓피플몰에 음반 리뷰를 쓰신 민호기 목사님의 표현을 빌리자면, "'Real' 음반이 맛배기였다면, 여기서 진짜 제대로 다 보여준다." 가스펠, , 재즈, 레게, , 등등... 한 곡 한 곡마다 여러 가지 스타일이 섞여 있다. 어떻게 이렇게 다양할 수 있는지 입이 떡 벌어질 정도다. 이전부터 이스라엘의 음악은 일반 교회에서 적용하기는 상상도 못 할 정도로 어려운 것으로 정평이 나 있긴 했지만, 이번 음반은 스튜디오 + 뉴브리드가 아닌 솔로라는 여건 때문인지 대부분의 곡들이 회중 예배가 아닌 감상용(?)으로 쓰여지고 편곡되었다. 한마디로 이스라엘의 음악성이 팀과 회중에게 제약받지 않고 최고로 발휘되었다고 보면 될 것 같다.

 

첫 트랙인 "My Name Iz" 는 이스라엘의 일곱 살 난 아들의 또박또박한 자기소개와 함께, 스티비 원더를 연상시키는 신디사이저 오프닝으로 포문을 연다. 이 인트로는 음반의 "진짜 첫 트랙" "Everywhere that I Go" 로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2007년에 나온 레이크우드의 Free to Worship 음반에 실리기도 했던 곡인데, 이 음반에서는 거의 완전히 새로운 곡으로 재탄생했다. 원곡보다 훨~씬 그루브있고 펑키하게 편곡되어졌다. 특히 후렴의 리드미컬한 피아노 라인은 예술이다. 편곡의 단순화 작업을 거치면 일반 교회 예배에서도 적용해볼 만한 몇 안 되는 곡들 중 하나이면서, 뉴브리드의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곡이기도 하다.

 

Real 음반에서도 볼 수 있듯이, 이스라엘의 스튜디오 음반은 마치 라이브 음반인 것처럼 상당히 유기적인 흐름을 가지고 있는 것이 특징인데, 이번 음반도 마찬가지다. 한 트랙이 끝나면 얼마간의 정적에 이어 생뚱맞게 다음 트랙이 나오는 대부분의 스튜디오 음반들과는 달리, 여기서는 대부분의 트랙들이 짧은 간주나 메들리로 연결되어 있어 상당히 몰입적이고 짜임새 있는 구성을 보여준다. "Everywhere that I Go" 역시, 신디사이저 후주가 끝나자마자 회중 소리와 함께 다음 곡인 "Just Wanna Say" 의 피아노 전주로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유기적인 흐름을 보여주는 한 예다. "Just Wanna Say" 는 음반 출시 전 싱글로 발매되었던 곡이고, 음반 프로모션 영상 등에서 BGM으로 쓰이기도 했던 곡이라 비중있는 곡이라 할 수 있다. 듣기만 하면 벌떡 일어나서 막춤이라도 춰야만 할 것 같은 신나는 리듬에 장르로 구분할 수 없는 팝, 레게, 락의 절묘한 조화... 여담이지만 난 지인들에게 "이 곡이 그래미 상을 탈 거라는데 내 손모가지를 건다" 고 말하고 다니기도 한다. -_-; 첫 두 곡과 마찬가지로 다음 트랙인 "Surely Goodness" 역시 하나님의 선함과 인자하심을 노래하는 레게 곡인 것을 보면, 음반 전반부 테마의 일관성 역시 음반의 완성도에 한 몫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Moving Forward" "Every Prayer" 와 함께 음반에서 유일한 발라드 트랙인데, 이스라엘의 가창력을 진짜 제대로 보여준다. "Every Prayer" 는 정통 블랙 가스펠로 내가 가장 많이 듣고 은혜 받는 노래이기도하다. 한편 힐송 런던의 Hail to the King 음반에도 수록된 노래인 "I Receive" 는 이스라엘의 손을 거쳐 원곡과는 완전히 다른 곡으로 재탄생했다. 특이한 드럼 비트와 후렴구에서 호소력있는 보컬이 인상적인 곡으로, 예배의 종착점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것" 이라는 것을 상기시키고 있다. 디퍼레벨 음반에서도 나왔던 "Where would I be" 의 짧은 연결구와 함께 다음 트랙인 "Saved by Grace" 로 넘어가게 되는데, 흑인 펑크의 절정이다. 중독성있는 기타 리프와 신디사이저, 오르간의 환상적인 조화와 더불어, 이스라엘의 신명나는(?) 블랙가스펠 보컬리딩까지게다가 중독성있는 후반부의 Vamp“Grace that brought me from a mighty long way” 라는 곡의 메시지까지 확실하게 전달하는 데 한 몫 한다. 음반의 프로듀서이자 이스라엘과 긴 인연을 맺고 있는 Tommy Sims의 곡인 “Better to Believe” 역시 짧은 게 흠이긴 하지만, 신선하다.

 

예배와 정의의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를 상기시키는 도전적인 타이틀곡인 “Power of One”, Sly Stone을 연상케 하는 “U R Loved”, “이게 정말 이스라엘인가?” 라는 생각이 들게끔 하는 (토비맥이 피쳐링한) “You Found Me”, 마틴 스미스가 피쳐링한 “Sing”, 안드레 크라우치의 명곡인 “My Tribute” 와 크리스 탐린의 “How Great is our God” 을 메들리한 “My Tribute Medley”, 그리고 아이튠즈 예약구매자들에게만 살짝 주어졌던 노라 존스를 연상시키는 어쿠스틱 재즈 “Others” 까지트랙 하나하나의 훌륭함과 전체적인 앨범의 유기적인 짜임새와 음악적 완성도를 구구절절 이야기하자면 스압의 압박이 상당할 듯 하니, 이쯤에서 리뷰를 접으려고 한다. 본 리뷰는 음악적인 면을 상당히 강조했지만, 민호기 목사님의 표현처럼 이 음반은 가장 음악적이기에 가장 깊은 예배의 훌륭한 예가 아닐까 한다. 하나님께 드려지는 찬양이 꼭 훌륭해야 할 필요는 없지만, 최고의 하나님께 최고의 음악으로 최고의 예배를 드리는 것, 모든 예배인도자들의 소망이 아닐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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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hlighter
4차원2009/06/04 01:10

어떤 거창한 제목을 붙여볼까 조금 고민하다가, 글의 내용만큼이나 소박한 제목을 붙였다. 계속해서 변하고 바뀌어 가는 게 사람이고, 모르는 것을 하나하나 배워가는 게 인생인데, 근래 내게도 없던 것이 하나 생겼다. 뭐 특별한 건 아니고, 제목만큼이나 소박한, "응? 김태희가 누구지? 이름은 들어본 것 같은데..." 라던 내게 "좋아하는 여자 연예인" 이란 새로운 개념이 생긴 것이다. 뭐 아는 사람들이야 알겠지만, 그 주인공이란 바로 몇 개월 전 <패밀리가 떴다> 란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 접했던 소녀시대윤아라는 친구다. 외모도 엄청나게 예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치 옆집 여고생 같은 친근하고 정감가는 이미지가 너무 좋았다.

<윤아. 이쁜 것도 너무 이쁘지만, 참 정감 가는 아이다.>

"K-Pop은 음악이 아니다!" 라거나, "아이돌 가수는 아무 짝에도 쓸데없다!" 따위의 생각을 가지고 있던 내가(물론 전반적으로 이 생각이 바뀐 것은 아니다) 한국 가수, 그것도 대표적인 아이돌 그룹 "소녀시대" 와 더불어 "윤아" 를 좋아하게 될 줄이야 누가 알았겠는가. 나도 전혀 상상을 못 했으니 말이다. 요즘도 간혹 소녀시대의 노래를 듣고 있는 나의 모습을 보면 많은 지인들이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곤 한다. "저 녀석이 원래 저랬었나?" 하는 그런 눈빛으로.

윤아라는 이 친구, 나랑 동갑내기다. 얼마 전에 생일을 맞았다고 하니, 만으로 치면 내 생일인 10월달까지는 오히려 한 살 더 많다고도 할 수 있다. ^^; 동갑이라는 사실 때문에 더 정감이 많이 가는 것은 사실이지만, 한편으론 안 믿기기도 한다. 어디, 우선 생김새부터 보자. 가히 여신 포스를 풍기는 그야말로 여자 "아이돌(Idol이란 영단어의 뜻이 "우상" 이 아니던가.)" 과, 제발 옷 좀 아저씨처럼 입고 다니지 말라고 친구들에게 잔소리를 듣는 그냥 평범한 남자 대학생 한 명. 극과 극까지는 아니더라도, 벌써부터 남극의 왠만한 크레바스 따위와는 비교도 안 될 엄청난 거리감이 느껴진다. 게다가 더 중요한 사실, 이 친구는 대한민국 국민 뿐만 아니라 전 세계 수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연예인이고, 나는 같은 과 친구보다 휴대폰에 저장된 이름 10개 더 많다고 좋아하는(사실 연락 끊긴 애들이나 다른 나라로 가 버린 애들 번호 하나도 안 지웠다...) 그냥 평범한 뉴질랜드의 한국인 대학생이다. 구글에 dbsdk를 치면 수십 페이지가 넘도록 윤아 한 사람의 얼굴이 나오지만, 내 이름을 치면 부천SK의 골키퍼부터 시작해서 민주노총의 위원장까지 별의별 사람들이 다 나온다. 나는 매일같이 아는 사람만 만나며 학교 갔다가 집에 왔다가 공부하고 놀고 먹는 그런 일상적인 패턴의 삶을 살지만, 윤아는 매일같이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며 나라면 상상도 못 할 일상을 매일같이 겪는다. 결정적으로 나는 윤아라는 사람을 알지만 윤아는 나란 사람을 죽었다 깨어나도 모른다. ^^; 한 마디로 압축하자면, 윤아는 굉장히 특별한 인생을 살고 있고, 나는 굉장히 평범한 인생을 살아가고 있다... 그런데, 정말로?

나를 비롯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주 쉽게 "연예인 윤아" 를 접할 수 있다. 인터넷에서 클릭 몇 번만 하면, 우리는 브라운관을 통해 비춰지는 "연예인 윤아" 를 바라볼 수 있다. 하지만 그런 우리들 중 99.9% 이상은, 평생 "인간 윤아" 를 접할 수는 없을 것이다. 나는 연예인이 되어본 적은 없지만, 아무리 많은 사람들의 인기와 사랑을 받는다 한들, 나 자신을 하나의 인격체가 아닌 "연예인" 이라는 틀 안에 가두어 내보일 수 밖에 없는 것이 나를 특별한 사람으로 만들어 주지는 않을 것 같다. 오히려 그 반대가 아닐까? 너무 많은 사람들이 "연예인" 이라는 색안경을 통해 바라보고 있기에, 지극히 평범하고 2차원적인 모습밖에는 제대로 보여주기 힘든 그런 삶이 연예인의 삶이 아닐까 한다. 심심찮게 보이는 연예인에 관련된 안 좋은 기사들이 이 생각을 뒷받침해주듯이 말이다. 반면에 나의 인생은 어떻게 보면 다른 수많은 사람들의 그것과 별반 다를 바 없고, 어찌 보면 그 누구보다 평범한 인생처럼 보일 수 있다. 나는 윤아와 같은 재능도 없고, 윤아와 같은 외모도 없기에, 내가 TV에 나가고 유명세를 탄다 한들 나를 좋아할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연예인" 이라는 틀로 놓고 보면, 난 처참하게 수준 미달이라는 소리다. 하지만 일상에서 나를 알고 관계하는 한 사람 한 사람은 나를 어떠한 고정적인 틀에 박힌 이미지가 아닌, 한 명의 인간으로 바라봐 준다. 가족과 친구들, 지인들처럼 나를 하나의 인간으로 대할 수 있는 그런 사람들이라면, 충분히 나를 좋아하고 사랑해주며, 그들의 인생의 중요한 한 부분을 차지하는 소중하고 특별한 존재로 나를 대해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들이 좋아하는 연예인보다도 더 소중한 그런 존재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내 인생은 너무나도 특별한 인생이고, 너무나도 값지고 귀한 인생인 것이다.

<많은 사람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는 만큼, 더 "평범"해 질 수 밖에 없는 사람이 연예인이 아닐까?>

얼마 전 교회에서 옆 건물로 낡은 쇼파 하나를 옮기다가,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이 너무 시원하고 예뻐서 잔디밭 한가운데에 그냥 쇼파를 놓아 버리고 거기 앉아 한없이 하늘을 올려다봤던 기억이 있다. 짧은 순간이었고, 일하다가 갑자기 뭐하냐는 목사님의 핀잔을 듣기도 했지만, 그 순간만큼 나는 정말로 행복했다. 소박하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아기자기한 삶을 많지는 않지만 정말로 살맛나는 사람들과 더불어 어울리며 살아가며, 때로 이렇게 그저 하늘을 올려다보며 행복해 할 수 있는 여유를 누릴 수 있다는 것. 너무나 행복했다. 이처럼 연예인들이 연예인이기 때문에 누릴 수 있는 행복과 만족 만큼, 내게는 연예인이 아니기 때문에 누릴 수 있는 행복과 만족이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래서 우리 모두의 삶은 너무너무 특별하고 소중한 것이 아닐까? ^^

마지막으로 본의 아니게 이 글의 주제제기자(?)가 되버린 윤아에게 들리지 않는 응원 한 마디를 남기고 글을 끝맺으려 한다. 나와 같은 나이이면서도 나라면 상상도 못 할 대단한 직업을 가지고 꿈을 펼쳐 나가는 모습이 참 멋지고 아름답다. 그만큼 나름 인간으로써의 고민과 문제들, 그리고 연예인이기 때문에 느끼는 괴리감 역시 떠안고 있겠지만, 그런 문제들을 회피하기보단 당당히 인정하고 이겨낼 수 있길, 그래서 앞으로도 후회 없이 꿈을 온전히 이루어 나갈 수 있게 되길 진심으로 바라고 응원한다. 윤아도 화이팅, 나도 화이팅, 여러분도 화이팅... You are special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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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sus2009/04/18 15:22

근래 소녀시대의 Gee라는 노래를 접하게 되었다. 하도 화제가 되어서 제목은 지겹게 많이 듣던 노래였는데 몇 주 전 지인의 차를 탔다가 듣게 되었다. 원래 난 케이팝은 거짓말 안하고 전~혀 안 듣는다. 예전 원더걸스의 텔미처럼 엄청난 전국적인 열풍을 불러일으키는 따위의 노래만 호기심에 들어 볼 뿐이다. 헌데 이 Gee란 노래가 참 들으면 들을수록 중독성이 있다. ㅡㅡ; 덩달아 얼마 전 "패밀리가 떴다" 란 프로그램에서 소녀시대 윤아를 보게 되었는데, 진짜 예쁘긴 예쁘구나란 생각과 함께 왜 남자들이 이렇게 열광하는지 이해가 되기도 했다.

Gee를 들으면서 많이 생각하고 소망했던 것은 참 이 노래의 가사가 예수님을 향한 나 자신의 고백이 되었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이었다. Gee라는 제목이 말하고 있는 것처럼, 가사의 중심적인 내용은 사랑하는 사람을 볼 때의 느끼는 여러 익사이팅한(?) 감정들을 표현하고 있다. 아시겠지만 첫 가사만 봐도 이렇게 시작한다: "너무 너무 멋져 눈이 부셔 쳐다볼 수 없어..."  우리는 이 노래를 들으면서 사랑하는 사람에게 이 고백을 하길, 또 사랑하는 사람에게 이 고백을 듣길 바라며 열광하기도 소망하기도 한다. 나 자신도 예외가 아닐 것이다. 이성에게, 또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저런 멋진 말들을 듣는다면(특히 노래와 춤과 함께라면.. ^^;) 얼마나 기분이 좋고 째지겠는가? 하지만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들보다 훨씬 소중한 예수님께 몇 번이나 이와 같은 가슴 떨리는 사랑의 고백을 드렸을까? 내 자신을 되뇌어보면 형식적으로, 말로만 드린 적은 많아도, 정말 진실로 드린 적은 손가락에 꼽을 것 같다. 예수님은 이 세상 그 어떤 것보다 더 귀한 찬양을 받기에 합당하신 분이신데,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하는 고백조차 그 분께 제대로 드리지 못하는 것이다.

얼마 전에 이런 일이 있었다. 수련회 저녁집회에서 예배를 인도하고, 다음 날 오후에 두번째 집회를 인도하기 위해 버스를 타고 교회로 향하던 중이었다. 버스에 앉아서 나는 전날 밤의 예배를 처음부터 끝까지 머리속으로 그리며 마치 그 현장에 있는 것처럼 마음으로 찬양했다. 그 중 "나는 주만 높이리" 라는 찬양이 있었는데, 이 찬양의 영어 원문 가사 중 이런 부분이 있다: "My allegience and devotion, my heart's desire and all emotion, go to server the Man who died upon that tree... (나의 충성과 내 헌신, 내 모든 소망 오직 예수, 나무에 달려 죽으신 그 분께)"  이 가사로 찬양하는 순간, 나는 말로만 듣던 "숨막히는 (Breathtaking)" 순간을 경험했다. 말 그대로 "헉!" 하며 숨이 턱 막히면서 눈물이 나왔다. 왜 그런지 자세히는 모르겠으나, 전능하신 하나님이 날 위해 이 땅에 오셔서 "나무에 달려 죽으신" 엄청난 사건에 대한 감사와 찬양의 고백이 넘쳐 흐르기 때문이 아니었나 싶다. 헌데 매일 이랬으면 얼마나 좋으랴. 예배인도자로 부끄럽지만 참 이런 경험이 손에 꼽는다. ㅠㅠ 예수님 처음 만났을 때의 그 가슴 떨리는 고백들은 온데간데없고, 어느새 형식적인 테크닉에만 집중하는 교만한 내 모습을 보기가 일쑤다. "주일 아침에 교회에 나가 보라. 어느 교회든 상관없다... 예배 때 손이 땀이 나는 사람은, 회중이 설교를 이해했는지 노심초사하는 설교자뿐이다. 무릎을 떠는 사람은 헌금 찬송을 부르는 자매뿐이다" 라는 도널드 맥컬로우의 말이, 오늘날 나와 우리네 교회의 모습이다. Gee의 가사가 표현하고 있는 설레임, 떨림, 흥분됨, 경이로움의 모습은 눈 씻고 찾아도 찾을 수 없다.

 


<하나님의 임재의 경이로움이 없는 예배. 우리의 모습이다.>
 

Gee의 전주에서 들을 수 있는 영어 나레이션은 이 가사가 첫사랑에 관한 이야기임을 말해준다("My first love story"). 주님 앞에서 정말 첫사랑으로 돌아가고 싶다. 첫사랑으로 돌아가서, 하나님께 Gee의 가사와 같은 고백을 하고 싶다. 정말 너무 멋지고 눈이 부시게 아름다우신 주님, 보기만 해도 가슴이 떨리는 그런 주님, 다른 사람들은 내게 못 말린다고, 바보라고 부를지라도 다시 그런 고백을 드리고 싶다. 또 Gee의 가사와 같은 경험들을 다시 체험하고 싶다. 너무 눈이 부실 정도로 아름다운 주님을 보고 싶다. 삶의 매 순간에서 날 깜짝 깜짝 놀라게 만드는 그 선함과 인자하심을 경험하고 싶다. 짜릿 짜릿 몸이 떨릴 정도로 강한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맛보고 싶다. 대중가요면 어떠하랴. 우리 예배자들이 마땅히 해야 하지만 하지 못하는 것들을 - 대상은 다를지라도 - 이렇게 명쾌하게 표현하고 있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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